그 사람을 이해하고 싶다면, MBTI보다 이걸 보세요.
- 보라 김
- 5일 전
- 2분 분량

F라면 하지 않는 말?
초등학교 2학년인 딸이 저에게 자주 묻는 말이 있습니다.
아프다거나, 더 놀고 싶다거나 할 때,
제가 공감은 생략한 채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하고 바로 대안을 내놓으면, 이렇게 말하곤 해요.
“엄마, T야?”
“T라 미숙해~ T라 미숙해~” (티라미수 케이크 멜로디에 맞춰 부르는 노래)
아직 성격이 뚜렷이 형성되지 않은 아홉 살 아이도
요즘은 MBTI를 밈으로 이해하고 활용합니다.
MBTI는 이제 하나의 ‘놀이 언어’가 되었죠.
💡 “근데, 성격은 언제 완성될까요?” 이 질문은 별도 콘텐츠에서 다룰 예정이에요.
MBTI, 정말 나를 보여줄까?
우리가 이렇게 사랑하고 신봉하는 MBTI,정말 과학적으로 성격을 측정할 수 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오’입니다.(물론 MBTI 밈은 여전히 유쾌하고 즐겁습니다만!)

왜 MBTI는 과학적으로 성격을 측정하지 못할까요?
뇌는 고정된 ‘유형’으로 사고하지 않는다.
뇌 활성 패턴과 MBTI 유형 간에 일관된 대응이 없다.
테스트-재테스트 신뢰도(test-retest reliability)에 문제가 있다.
이분법적 분류는 인간의 성격과 정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개념 정의가 불분명하고 측정 도구(항목, 척도)의 신뢰성이 낮다.
등등이 있지만,
여기서 모두 다루지는 않겠습니다.
우리는 정해진 유형이 아니다.
MBTI는 성격을 4가지 차원으로 나누고,
각각을 두 가지 선택지로 구분해 총 16가지 유형을 제시합니다.
하지만 현대 신경과학과 심리학은
인간의 성격이나 정서 상태가 ‘고정된 범주’로 뇌에 자리 잡고 있지 않다고 말합니다.
리사 펠드먼 배럿 교수의 이론에 따르면,
뇌는 감정을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처럼 작동시키지 않습니다.
대신 현재 상황, 과거의 경험, 신체 감각 등을 종합하여 매 순간 ‘감정’을 구성해냅니다.
즉, 뇌는 유연하고 맥락적으로 작동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I vs. E’처럼 이분법으로 나뉠 수 없는 존재입니다.
성격은 ‘스펙트럼’이다.
실제로 우리의 성격은 고정된 유형보다는 연속적인 스펙트럼에 가깝습니다.
매일의 컨디션, 경험, 환경에 따라 성향도 바뀔 수 있죠.
오늘은 회피적이었다가도, 내일은 적극적으로 변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같은 나도, 같은 상황에서 전혀 다른 반응을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이해한다는 건?
진짜 중요한 건 이 질문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나’ 혹은 타인을 이해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성격을 이해하고 싶다면,
사실 그 사람의 뇌가 어떤 예측을 만들어내는지를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뇌는 현재 상태를 예측하고 행동하기 위해
이미 우리 몸의 신체 에너지 상태(바디 버젯)를 사용합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어릴 적 오랜 시간 동안 물리적, 정서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한 환경에 있었다면?
그 사람의 뇌는 성인이 되어서도 자동적으로 ‘긴축 모드’로 작동할 확률이 높습니다.
그 결과,
스트레스, 자괴감, 우울감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세상을 부정적, 회의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무의식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는 자각하지 못합니다.)
이런 일관성이 우리 눈에는 아마 '성격'으로 보일 겁니다.
하지만 실상은, '성격'이기보다 그 사람의 예측 기계인 뇌가
특정한 환경으로부터 쌓인 데이터로 인해 계속 비슷한 예측 ('세상은 믿을 만하지 못하다')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더 사실에 가깝습니다.
그렇다면 MBTI는 쓸모없을까?
꼭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 뇌는 복잡한 대상을 ‘유형화’해서 이해할 때 더 편안함을 느낍니다.
그래서 MBTI처럼 사람을 구분해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정도 자기 이해나 소통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죠.
하지만 정말로 누군가를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누군가의 동기와 상태를 잘 이해하고 싶다면,
그 사람의 맥락과 역사를 봐야 하지 않을까요?
진정한 연결은, 분류와 유형 너머의 이야기에서 시작됩니다.